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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왜 자꾸 이러는가? - 세계화, 지리적 제약의 축소, 전염병 무한대 확산, 전염병 방역 능력은 선진국 척도이며 국력, 메르스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초기대응과 조처는 총체적 무능
  • 기사등록 2015-08-11 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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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류희인 위기관리센터장으로부터 국가 위기관리를 위한 매뉴얼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사진출처. ‘노무현재단’)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누구나 들은 말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제국 존속 기간도 그렇고, 통치 영역의 광대함도 그렇다. 문화에 끼친 영향은 더 크다. 로마의 멸망에 대해 연구한 사람만큼이나 많은, 멸망 원인과 다양한 학설이 그런 비중을 증명한다. 로마 사회지도층의 정신적 부패, 정치제도의 불공정성에서부터 급격한 기후변화, 기독교의 특권 등 여러 원인이 있다. 최근에는 로마 상수도 시설에 사용된 납의 중독으로 전투력이 약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 원인 중에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원인들도 많다. 걱정이다. 로마의 멸망 원인이 무엇이던 로마는 망했다. 476년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르케가 로마로 쳐들어 왔다. 로마로 통한다던 바로 그 길로 왔다.

오늘날 세계화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각 나라의 문화와 경제, 정치형태에 전 세계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더 큰 영향이 있다. 지리적 제약의 축소다. 세계는 일일 생활권으로 접어들었다. 인터넷의 발달이 가속도에 불을 붙였다. 먼 거기에 있는 사람들끼리 인터넷으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실제 접촉도 활발하고 왕성하다. 그런데 오도아르케가 로마로 통하는 바로 그 길로 쳐들어왔듯이, 세계화로 좋은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사회적 습관과 범죄도 이동하고, 경제적 압박과 군사적 위협도 있다.

전염병도 세계화로 인한 심각한 악영향 중 하나다. 세계 어느 곳이건 전염병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다. 무한대다. 세계화로 인한 지리적 제약의 축소가 전염병에게는 전파력 무한대로 작용했다. 학계의 연구는 그러한 전염병을 하나하나 밝혀 왔다. 그러나 발견하기 어려운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문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은 매년 발생한다. 매년 10월에서 4월에 집중돼 계절 인플루엔자라고도 한다. 매년 변이를 일으키면서 발생하기 때문에 항체가 없어 매년 감염된다. 환경 악화나 동물과의 접촉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 하거나, 강력해진 변종 바이러스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전쟁 등의 목적으로 인간에 의해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위협적이다.

오늘날 자국민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역은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전염병에 대한 예방과 방역 능력은 선진국을 규정하는 척도이며 국력이다. 우리나라도 세계화의 영향으로 많은 전염병이 들어온다. 최근 들어 방역 당국을 긴장시켰던 전염병으로는, 2002년 중국 광동지역에서 발생해 2003년 전파된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사스), 2009년 멕시코에서 발생하여 돼지독감이라 불리던 신종플루(HINI) 그리고 이번에 중동에서 전파된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이 있다.

메르스는 초기에 박근혜 정부가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전염병이었다. 병원의 메르스에 대한 확진검사 요청을 환자가 메르스 발생국인 사우디에 체류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질병관리본부가 거부했다는 점. 최초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평택성모병원이 질병관리본부 등과의 긴급대책회의에서 병원 내  외부의 통제와 치료전담병원의 지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방만한 초기 대응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최초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전염성이 약하다고만 말하고 있었다. 메르스 확진 판명이 난 지난 5월 20일에야 질병관리본부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설치한다. 컨트롤 타워를 보건복지부가 맡은 건 5월 28일이다. 이후 계속 감염자가 늘어가자 총리대행이 컨트롤 타워에 가담했고, 다시 국민안전처에 대책본부가 생겼다. 늑장 대처에 방만한 조처, 안이한 대응. 상황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 총체적 무능이다.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확진 판명이 난 환자들에 대해서나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등에 대한 정보는 감춰졌다. 국민들은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보공개를 시작한 이후 병원과 감염자에 대한 정보는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언제까지 어떻게 진행될지 이미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참여정부는 전 세계가 공포에 질렸던 사스를 사망자 0명으로 막아냈었다. 사스와 메르스는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된다. 감염에 따르는 증상도 비슷하다. 사망률은 메르스가 높으나 감염률은 사스가 높다. 이미 방역에 대한 국민들의 눈높이는 사스 방역에 따라 선진국 수준에 맞춰져 있다.

사스와 메르스에 대한 대응의 차이는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차이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총체적 무능이긴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잘했다고만 볼 수 없다는 시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출발한 한미 FTA에 따른 의료 민영화를 지적한다. 2004년 이후 추진된 의료민영화로 공적 보건행정이나 의료시스템이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해체되었다고 본다. 진주의료원의 폐쇄를 그 예로 든다. 삼성 등 자본을 위한 조치라는 의심이 깔려 있다. 어떤 면에서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다 해도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방역에 대한 차이는 있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노무현 정부 재난도 국가 위기, 청와대가 관리

사스 초기, 청와대가 나서 총력 대응

이명박 · 박근혜 정부 ‘노무현 지우기’

메르스 초기, 질병관리본부가 대책본부



우리나라는 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등 대형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군사 · 외교 등 전통적 안보 위협을 막는 것만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 보호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난에 대한 안전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세계도 냉전 이후에는 비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정부 내에 조직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한다. 참여정부는 인수위 시기에 대구 지하철 화재를 겪으면서 특히 재난에 주목하게 된다. 이것을 정확하게 본 사람은 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겸 위기관리센터장이다. 2014년 5월 ‘한겨레 21’이 인터뷰 했다. 예비역 공군 소장인 그는 현재 세월호 특조위 안전분과 비상임위원이다. 이 인터뷰에서 류희인 위원은 참여정부가 전통적인 안보 위협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자연재난(태풍·홍수·폭설 등), 인적 재난(붕괴·폭발·화재·침몰 등), 국가 핵심 기반 마비까지 안보 개념에 집어넣어 이를 ‘포괄적 안보’로 규정했다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재난도 ‘포괄적 안보’로 규정하고 국가 위기로 관리한 것이 참여정부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와의 근본적 차이는 여기서 갈라졌다. 참여정부에서는 청와대가 군사안보 위협과 재난사태 등 국가 위기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위기관리센터도 만들었다. 위기관리센터는 청와대 지하 벙커에 전자상황판(KNTDS 시스템)을 만들어 종합상황실을 운영했다. 위기에 대한 신속대응력을 높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떠 올리게 한다. 안타까움을 넘어선다.

국가위기 관리를 위해 매뉴얼도 만들었다. 국가 위기를 33개(군사·외교 등 전통적 안보 13개, 자연·인적 재난 11개, 국가 핵심 기반 마비 관련 9개)로 규정했다. 역대 정부 최초였다. 위기별로 1권씩 33권을 만들었다. 각 위기별로 더 구체적인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도 제작했다. 276권이다. 다시 여기에 실제 현장에 출동하는 지역 경찰서 · 소방서 · 군부대 · 지방자치단체 등의 행동지침을 담은 ‘현장조치 행동매뉴얼’ 2400여 권을 만들었다. 대규모 인명피해 선박 사고 대응 매뉴얼 등 총 8종의 주요 상황 대응 매뉴얼은 따로 만들었다. 전체 매뉴얼만 총 2800여 권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가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내놓고 ‘잃어버린 10년 청산’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위기관리센터는 위기정보상황팀으로 바뀌면서 비서관이 맡던 센터장도 2급 행정관인 팀장으로 바뀐다. 인원도 24명에서 15명으로 줄었다. 사무처가 폐지되면서 청와대에는 재난관리에 대한 컨트롤타워 기능이 사라졌다. 기존 통합관리 체계는 없어져 버렸다. 외교안보와 재난관리를 분리해 외교안보분야 위기는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담당하고, 재난관리분야는 행정안전부가 맡게 한 것이다. 매뉴얼도 전통적 군사안보를 뺀 3분의 2가량의 재난 매뉴얼이 현재의 안행부를 비롯해 각 부처로 보내졌다. 캐비닛에 들어가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박근혜 정부도 재난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외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안전처가 신설되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밑에 재난안전비서관을 두는 등 일부 변화를 시도했으나 국방, 외교, 통일 같은 전통적인 안보와 자연, 인적 재난의 구분은 계속되고 있다.

결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역도 국방이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방역도 청와대가 책임져야 할 국가위기로 간주한 것이다. 2000년 국민의 정부 당시 발생한 구제역 사태에서 살처분 가축은 모두 합쳐 2,200마리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때는 경북 안동의 한 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태가 안이하고 허술한 대응으로 전국으로 번지면서 국가적 재난으로 치달았다. 300만에 가까운 가축이 살처분 됐고, 피해액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참여정부가 사스에 대응한 상황을 보자. 참여정부는 중국 광동지역에서 사스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그 심각성에 주목했다. ‘주의’에 준하는 ‘관심’ 단계에 돌입한다. 메르스가 지역으로 번지고 있는데도 국가의 위신문제로 ‘경계’ 단계를 발령하지 않고 ‘주의’ 단계를 유지한 박근혜 정부와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고건 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했다. 범정부차원의 사스 정부종합상황실이 출범했다. 당시 1대뿐이던 열 감지기를 복지부 예비비로 10대를 구입해 공항에 배치했다. 착륙한 비행기에서 승객이 내리지 못하도록 한 뒤 직접 기내로 들어가 열 감지기로 체온을 쟀다. 군 의료진 70명을 방역에 투입시켰다. 당시 기록이다. 전국 242개 보건소가 사스 감염 위험지역에서의 입국자 23만 명에 대해 전화 추적조사를 벌였다. 항공기 5400여 대의 탑승객 62만여 명, 선박 1만여 척의 탑승객 28만여 명 등 90만여 명에 대해 검역을 벌였다. 환자 접촉자 등 2200여 명이 자택 격리됐으며, 1339 응급의료 상담전화를 통해 3300여 건의 사스 상담이 이뤄졌다. 곳곳을 다니면서 전쟁 치르듯이 방역 활동을 했다. 초동 대응에 사활을 걸었다. 박근혜 정부와는 얼마나 큰 차이인가? 그 차이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31일 국립보건원 사스 방역평가보고회 인사말 도중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방역에 감동했다며 "울 뻔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출처 ; ‘노무현재단’)


국정은 정략적 차원의 편협성에서 벗어나야

제도의 도입은 수단이 아니라 제도의 지향성에 맞게

재난관리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맡아야

정부와 관련부처가 국정에 임하는 진정성도 문제



영국 마거릿 대처의 정책은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 듯하다. 대처와 관련하여 영국의 상황을 잘 정리한 책이 오언 존스의 ‘차브’(북인더갭, 2014)다. 30대 중반의 영국 젊은이의 분석과 시각이 대단하다. 부럽다. 대처는 탈 공산주의(사회주의)로 향하는 유럽의 흐름 속에 있었다. 공산주의 혁명에 동조했던 유럽의 혁명 세대가 보수화 되고 부패해 갔다. 급기야는 6·8세대에 의해 기성세대로 치부되며 그 존재가 부정되기에 이른다. 계급에 대한 공포로 학창시절을 보낸 대처는 ‘계급은 공산주의 개념이다’란 생각을 뿌리 깊게 갖고 있다. 대처는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다. 계급 타파와 탈산업화를 지향해 탄광과 제조업을 단숨에 없애나갔다. 저항하는 노조는 철저하게 파괴했다. 부자감세와 트리클 다운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의 정책이다. 계급은 타파되었고 이제 모두가 중산층이다. 기회는 열려있다. 자전거를 쉬지 않고 달리면 직업을 구할 수 있다. 스스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가난은 근면성 위기의 결과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복지의존을 혐오하여 빈민은 보호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가난이 타락과 범죄로 재구성되는 순간 가난한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부채감은 사라진다. 이제 생활을 위한 안전은 복지에 의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각 개인의 문제가 된다. 범죄나 폭력, 재난으로부터의 안전도 개인의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에 대한 안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영국과 우리는 당연히 상황이 다르다. 그런데도 대처가 진행한 정책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진행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명박 정부는 재난관리에 대한 대처 방법에서 노무현 정부와는 궤를 달리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이다. 국정방향의 차이였다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재난관리를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에서 제외하는 것은 국정방향의 차이로 설명될 수가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의 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는 단순한 ‘노무현 지우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다. 그런데 청와대가 국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는 정책 보다는, 참여정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정략적 선택을 우선시 했다. 참여정부 보다 더 좋은 정책을 실시해서 ‘노무현 지우기’를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지운 것이다. 지난 정부를 정적으로 규정하고 ‘노무현 지우기’를 최우선 순위로 내세운 것은 아무래도 편협한 조치이다. 국민의 안전 보다 정적의 견제가 우선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국정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노무현 지우기’는 사회적 가치개념마저 변화를 불러오고 있었다. 권위주의가 되살아나면서 전관예우의 관행도 고개를 들었다. 부패의 연결고리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경유착이 능력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세월호 사건 때, 지상파방송이 맨 처음 거론한 것은 유가족들에게 지급될 사망자들의 보험료였다.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은 세월호 사건이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했다. 이런 시각은 당시 KBS 김시곤 보도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우익단체들은 더 했다. ‘놀러가다 죽은걸 어쩌란 말이냐’고 했다. 재난으로부터의 국민의 안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재난을 청와대가 관리해야 할 국가위기에서 제외한 것이 설혹 신자유주의 도입의 결과라고 해도 그렇다. 제도 도입의 목적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도입했다 하더라도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만이 국민을 위한 제도도 아니다. 사민주의도 있다. 사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북유럽의 나라들은 국민소득이나 삶의 질이 우리 보다 훨씬 더 높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이식 받은 우리다. 객관적이라는 시장의 논리마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치장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출발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직도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경제가 발전했다고까지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신자유주의의 도입이 대세라고 할 것 만이 아니라 신중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도 재난관리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맡는 것이 맞다.

메르스 사태로 우려할 상황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위기대응력이 그것이다. 노한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6월 4일 SNS인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벌어진 후 가장 전문가집단이라 할 수 있는 대한감염학회의 행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의사는 비단 저 한 사람이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글에는 대한감염학회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 판명된 지난 5월20일 이후 31일까지 대한감염학회는 이렇다 할 공식입장 없었다. 그러나 김우주 이사장이 항상 장관 옆에 배석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뒤 늦게 학회의 견해가 나왔다. 지역 확산이 낮다거나, 치사율이 높지 않다거나,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기 정도라는 견해다. 모두 맞는 말이라 해도 ‘사태의 초기에 전문가로서의 목소리, 늑장 대응한 정부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작금의 사태에 대한 해결책 제안이 빠진 것’을 지적한다.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하고 온 국민이 혼란에 빠지기까지 정부의 무능함과 책임은 여실히 밝혀졌고 매일같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의사들은 이번 기회에 보건이 사라진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을 살려내야 하고, 대대적인 보건의료제도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실무적으로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전문가 집단에서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습니다. 대한감염학회는 전문가로서의 입장을 국민에게 내놓지 않았고, 정부에 대한 질책도, 주문도 없었습니다. 대신,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장관 옆에 항상 서있었듯이 감염학회도 늘 정부 편에 서있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감염성 질환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대한감염학회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는 비전문가 집단이라서 그렇다 치고, 전문가 집단이 나서서 혼란에 빠진 국민을 안심시켜 주는 일이 어려웠을까요. 국민에게 감추고 거짓말하는 정부를 질타하고 전문가답게 해결책들을 제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단체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통곡하도록 안타깝습니다. 이제라도 대한감염학회는 감염질환에 대한 최고 전문가단체로서의 권위를 보여주실 것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거듭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신종플루 이후 ‘신종인플루엔자 범부처 사업단’을 발족시킨다. 연구기간은 2010년 10월부터 2016년 10월까지다. 6년간 사업비는 690억 원이다. 사업단장은 고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다. 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 범부처 감염병 대응 연구개발 추진위원회가 더 많은 예산으로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기술개발 추진전략을 세운다. 메르스 사태 내내 보건복지부 장관 옆에 이사장이 배석한 대한감염학회는 여기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에 대한감염학회가 내 놓은 방안은 없다.

이번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를 보자. ‘메르스는 현재 치료제 백신이 전무한 상태에서 조기진단과 격리 치료가 최선의 방책인데’로 시작하는 감염진단키트 제조사 사장의 안타까운 하소연이다. 학교 동창들의 SNS에 올라와 있는 그의 글은 질병관리본부의 현실이다. 국내에는 3개의 감염 진단키트 제조사가 있다. 국내 시장은 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호흡기 깊은 곳까지 검사(하기도 검사)해야 하는 특성상 모두 WHO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제조되었으나 아직 식약청에 등록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3개의 회사 중 한 회사와 공동연구개발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그 회사의 진단키트만으로 초기에 메르스 감염 여부를 진단하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에볼라 전염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응급사용허가(EUA)를 내려 여러 회사의 제품으로 조기에 감염 여부를 진단한 전례가 있다. 불길한 기억이 떠오른다. 세월호 사건 때의 ‘관피아’다.

차이는 또 있다. 정부가 국정에 임하는 진정성이다. 2003년 7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 방역평가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사스 방역에 최선을 다한 보건복지부 및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극찬하며 "이번에 보니까 공무원들이 국민을 감동하게 하는 일을 했다"며 "제가 조금 전에 까딱하면 울 뻔 했습니다. 안 울려고 물도 먹어보고 했습니다."고 말했다. 솔직하다. 메르스 사태에 임하고 있는 공무원들과 의료계 인사들은 사스 때의 공무원들과 그 때의 의료계 인사들이 아니란 말일까?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의 독특한 눈물을 보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 또 어떤 상황을 보게 될지 이젠 좀 두렵다. 대한민국 왜 자꾸 이러는가?


권태영 주필/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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